[나이듦을 공부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나이 든다.
▶필자 소개
인간은 결국 죽는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이 듦은 그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다. 어느 한 시점이 아닌 연속선상의 일이며, 어느 한 단계도 건너뛸 수 없다. 20대도 40대도 나이를 먹지만 인식되는 이미지는 각기 다르다. 20대의 나이 듦은 성장으로, 40대의 나이 듦은 성숙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 이후의 나이 듦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나이 듦을 인식하게 될까.
나이 듦의 기준과 정의는 다를지라도, 세대를 불문하고 '나이 듦'에 대한 관심은 적지 않다. ‘나이 들어 보이는 것'에는 더욱 민감하다. 20대가 보톡스를 맞고 30대의 리프팅 시술이 흔한 것을 보면, 세월의 축적을 늦추기 위한 노력은 세대를 불문한다. 40대 중반을 지나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말로 대표되는 체력 저하, 회복력 둔화, 기억력 저하의 한탄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모든 대화는 건강과 몸에 좋은 영양제 정보로 끝을 맺는다. 20대의 대화가 연애사로 끝났던 것처럼, 깔때기 이론은 세월을 건너 위치를 옮겼다. 옆자리 후배가 턱밑 피부가 처진 게 보인다며 피부과 시술을 권했을 때, 무심한 척 버티던 나도 결국 피부과를 검색했다. 나치에 저항하며 몇 번이나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긴 장 아메리가, 수용소보다 늙음이 더 서럽고 무섭다고 한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행동의 기저에는 ‘사회적 연령’¹ 개념이 작용한다. '사회적 연령'이란 타인의 시선이 우리에게 측정해 주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인 공고는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요구하면서도 지원 가능 연령을 표기하곤 했다. 명시적인 표기는 사라졌지만, 그 조건이 없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타인의 잠재력을 지워버리는 시선 속에서 자신의 현재 위치를 자각하게 되는 것, 그런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 순간 우리는 자신의 잠재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가능성 자체가 지워지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오랜 경험과 지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이 아닌 타인의 결정에만 따라야 하는 쓰라린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물론 이 '사회적 연령'의 적용도 시대적 맥락과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관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사회적, 개인적 자산에 따라 '사회적 연령'이 관대하게 매겨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이 듦을 유보하려는 각종 행위들은 타인의 기준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사투로 보이기도 한다.
사유를 따라가다 보니 조금은 화가 난다. 미래의 어떤 가능성과 혁신도 거세당한 존재로,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필요할 때만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나이 듦이라면, 그 지경에 이르기 전에 삶을 끝내고 싶을 정도의 기분마저 든다. 중장년을 거쳐 노년의 시기에 이르렀을 때의 다양한 삶과 도전 사례가 소개되고 있지만, 그저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태도로만 바라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시선이 원하는 대로 '긍정적이고, 저항도 불평도 없이 품위 있게'만 늙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일이 달라지고, 머무는 자리가 변할지라도 '노년의 나'는 그 이전의 삶과 단절된 존재가 아니다. 노년이 된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의미 없어지거나, 스스로의 주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랜 시간과 수많은 감정, 시행착오를 거쳐 찾아낸 나, '진공 상태'가 아닌 관계 안에서의 내 모습을 찾아가는 일, 그 과정은 중년 이후라고 해서 달라질 수 없다. 이전과 다르게 조금씩 더 외로워지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는 어떻게 나만의 속도로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지금부터 답을 찾아가야 할, 삶의 질문이다.
¹ 『늙어감에 대하여』, 장 아메리, 돌베개출판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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