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경제

"60세 은퇴 공식은 끝났다"... 장수경제가 바꾸는 일과 노후

이충우 숙명여대 교수 "고령층, 복지 대상 넘어 생산자·소비자·투자자로 봐야" 길어진 생애에 ‘교육-일-휴식-전환’ 반복…“40대부터 자신과 배움에 투자해야”

문유정 기자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고령인구가 늘면서 복지와 돌봄에 필요한 비용,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 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숙명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실버비즈니스전공 이충우 학과장은 초고령사회를 ‘비용의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고령층을 복지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생산자이자 소비자, 투자자로 바라보고, 길어진 생애에 맞춰 일과 소비, 교육, 건강, 자산관리의 구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에게 초고령사회와 장수경제가 가져올 변화, 그리고 길어진 삶에 맞춰 달라지는 은퇴의 기준과 노후 준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이충우 숙명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실버비즈니스전공 학과장 
이충우 숙명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실버비즈니스전공 학과장 

 

Q. 초고령사회가 우리 경제와 사회에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초고령사회를 단순히 고령인구의 증가로만 바라보면 결국 ‘비용의 문제’가 부각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비용이 아니라 혜택의 관점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초고령사회를 얼마나 체감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큰 충격이 없다 보니 마치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현재의 익숙함에 머물며, 이미 깊숙이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유럽과 미국, 일본은 이미 ‘롱제비티 이코노미(Longevity Economy)’ 관점에서 초고령사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장수경제의 핵심은 고령층의 경제력이나 소비력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전 연령층을 아우르면서 고령층 역시 생산자이자 소비자, 투자자, 사회활동 기여자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노인’이라는 하나의 집단보다 개개인의 경험과 욕망,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시니어가 늘어나고, 청년층과 고령층이 협업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사례도 증가할 것으로 봅니다.

 

Q. 고령층을 복지와 돌봄의 대상이 아닌 ‘경제 주체’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고령층을 경제 주체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생산가능인구의 급감이나 중위연령 상승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때문만은 아닙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하는 ‘건강 노화(Healthy Ageing)’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핵심은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원하는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체적·정신적 능력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배우고 이동하며 다른 세대와 관계를 맺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노년에 대한 고정관념도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현재의 베이비붐 세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직접 경험하며 우리 사회의 여러 시스템을 만들어온 세대입니다. 단순히 자산이 많고 소비력이 있는 고령층으로만 국한해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이들을 이해하는 데는 ‘퍼레니얼(Perennial)’ 개념이 잘 들어맞습니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새롭게 배우며 일을 시작하고, 은퇴 이후에도 투자자나 창업자, 기획자 등 다양한 역할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역할을 뒷받침할 플랫폼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일본의 ‘긴자 세컨드 라이프’는 50~60대 퇴직자의 창업을 지원하며 사무공간과 컨설팅을 제공하고, 청년 창업가와의 네트워킹까지 연결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회사의 설립자가 당시 27세의 젊은 창업가였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Q. 장수경제가 본격화되면 어떤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질까요?

장수경제는 단순히 고령인구가 늘어나면서 형성되는 시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변화는 사람들의 생애가 길어지면서 소비와 일, 건강, 여가, 자산관리의 구조가 달라지는 데 있습니다.

지금까지 실버산업은 건강관리와 요양, 돌봄, 복지용품 등 고령화에 따라 발생하는 필요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여행과 레저, 문화, 교육, 금융, 주거, 일자리, 자기계발 등 삶의 질과 자기실현을 위한 영역으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고령층에 진입할 세대의 소비 경험도 이전 세대와 다릅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소비를 경험했고 브랜드와 품질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으며 디지털 환경에도 익숙합니다. 따라서 이들을 단순히 ‘노인’이라는 하나의 소비집단으로 묶어 바라보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특히 교육과 여가 시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건강을 유지하면서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일을 통해 소득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학습과 여가 활동을 누리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장수경제도 지속될 수 있습니다.

 

Q. 에이지테크는 앞으로 고령층의 노후생활을 어떻게 바꿀 것으로 보십니까?

에이지테크(AgeTech)의 본질에는 ‘노화’가 있습니다. 노화에서 파생되는 산업과 시장의 중심에는 결국 돌봄이 있고, 여기에는 민간 시장의 서비스와 공공 복지의 영역이 함께 존재합니다.

앞으로 가장 큰 변화는 에이지테크의 적용 범위가 ‘돌봄’에서 ‘생활’ 전반으로 확대된다는 점입니다. 의복과 웨어러블, 식품, 주거, 웰니스, 여가, 경력 관리, 건강 관리, 노쇠 관리 등 일상 곳곳에서 기술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편의와 자립, 존엄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다만 ‘에이지테크 갭(AgeTech Gap)’이 발생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새로운 기술에는 연구개발비 등 상당한 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고가의 서비스가 되기 쉽고, 고령층의 경제적 여력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기술의 혜택에 격차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사회적 관계입니다. 기술이 생활의 편의와 자립을 도울 수는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망까지 대신 만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Q. 장수경제 시대에는 ‘몇 살까지 일하고 언제 은퇴할 것인가’라는 기준도 달라져야 할까요?

우선 ‘유병장수인가, 무병장수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높은 수준이지만, 오래 사는 것과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결국 경제활동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는 ‘건강수명’의 관리가 선결 조건입니다.

청소년기에 공부하고 청년기에 취업한 뒤 노년기에 은퇴하는 전통적인 생애 주기도 이미 실효성을 잃고 있습니다. 길어진 수명을 전제로 한다면 ‘교육-일-휴식-전환’이 생애 동안 순환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 50대를 보면 현실은 더욱 분명합니다. 2024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에서의 평균 퇴직 연령은 49.4세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자녀 교육비와 주택 상환비, 부모 부양비 등 가계 부담이 큰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 내 지위와 역할을 잃고 근로소득까지 줄어든다면 가계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년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합니다. 일본은 법정 정년이 60세이지만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고용 확보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고,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제공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퇴직 후 재고용이나 파트타임 등 다양한 선택지도 마련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계속 일하기를 원하는 고령층의 욕구에 맞춰 공공과 민간의 일자리 인프라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지금의 40~60대는 무엇을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까요?

자신에게, 그리고 배움에 투자해야 합니다. 자신이 진정 추구하고 실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발견해야 합니다. 40대 중반 이후가 되면 퇴직이라는 압력을 직간접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건강이 유지되는 한 퇴직은 최대한 미루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재교육이 중요합니다. 지금의 경력을 이어갈 것인지 새로운 경력으로 전환할 것인지에 따라 필요한 교육과 학습도 달라져야 합니다.

재교육을 바탕으로 재취업이 이어지고 경력을 지속할 수 있다면 평균 이상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가령 월급 200만 원 직장인의 근로소득을 건물주의 임대소득과 비교해볼까요? 매달 200만 원의 임대소득을 얻으려면 수익률을 연 4~5%로 가정했을 때 대략 7억~10억 원 정도의 자산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근로소득은 매달 일정한 현금 흐름을 만들어주는 채권과도 같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일과 직업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할 필요도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고, 생각의 폭을 넓히고 배우는 과정이 원하는 삶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뒤에도 긴 삶은 이어집니다. 초고령사회에서 달라지는 것은 단순히 노후의 길이만이 아닙니다. 일하는 기간과 소비하는 방식, 배우는 시기와 은퇴를 준비하는 방법도 함께 달라지고 있습니다.

고령층을 생산자이자 소비자, 투자자로 바라보는 장수경제의 관점도 이러한 변화에서 출발합니다. 길어진 삶에 맞춰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일과 은퇴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문유정 기자kidcol03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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