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안 사람이 언니일 뿐 ㅡ 연금이 지켜준 어느 은퇴자의 평화로운 오후
책꽂이 하나로 도서관을 만드는 변택주 작가를 만나다
경기도 부천시의 한 모임 자리. 이곳에서 변택주 작가는 그 흔한 '선생님'이라는 존칭 대신 별명으로 불립니다. 그를 오래 알아온 이들은 '택주', 아직 어색한 사이는 '늘보'라고 부릅니다. 먼저 알았다고 선배가 되는 게 아니라, 먼저 안 사람이 잠시 '언니'가 될 뿐이고, 서로 배울 게 생기면 다시 같아진다는 게 그의 지론입니다.
이 모임을 오래 이끌어온 그는 이러한 수평적 관계를 자연스레 몸에 익혀왔습니다. 패션업계와 기업 경영자, 경영 코치를 거쳐온 그이지만, 지금은 글을 쓰고 꼬마평화도서관을 운영하며 살아갑니다.
법정 스님과의 인연, 은퇴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에는 몇 차례 결정적인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첫 계기는 법정 스님과의 인연이었습니다. 아내를 따라 길상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인연이 깊어졌고, 이후 일요법회 사회까지 맡게 됐습니다. 법정 스님의 책을 주변에 나눠주던 어느 날, "왜 계속 이런 책을 주느냐"는 한 선배의 물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얼마나 따뜻한 울림인지 제대로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든 순간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방학숙제 일기 말고는 글이라곤 써본 적 없던 그는, 홀로 글쓰기를 연습해 『법정스님 숨결』을 펴냈습니다. 5년의 준비 끝에 책이 완성됐지만, 법정 스님은 끝내 이 책을 보지 못한 채 입적했습니다. 이 무렵 그는 아내와 함께 하루 한 끼만 먹는 조촐한 삶도 연습하고 있었고, 그 바탕 위에서 스스로 경영자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정작 일대 전환점은 은퇴 이후에 찾아왔습니다. 법정 스님과 인연 있는 이들을 취재하러 다니면서도 경영 코치와 기업 강의라는 돈벌이를 놓지 않고 있던 그에게, 동행한 사진기자가 물었습니다.
"스승의 발자취를 더듬는 인터뷰를 하면서 밥벌이도 같이 하시려고 해요?"
이 물음은 그의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의미 있는 일과 돈벌이, 두 가지를 동시에 붙잡고 있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지금 그의 '일' — 꼬마평화도서관
은퇴 후 그가 손에 쥔 새로운 '일'은 '꼬마평화도서관'입니다. 한반도가 영세중립국이 되어야 평화로울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해 관련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평화를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이 평화에 관한 책을 읽고 체감하는 것이라 여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평화도서관을 구상했습니다. 넓은 공간이나 예산 없이도 '책꽂이 하나만 있으면 도서관을 열 수 있다'는 생각으로, 2014년 12월 9일 파주출판단지 보리출판사 1층 카페에 1호점을 열었고 닷새 뒤인 12월 14일에는 서울의 채식당 '마지'에 2호점을 열었습니다.
이후 관공서와 협업도 시도했으나 담당자가 바뀌면 활동이 끊기는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개인과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여는 방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전국 57곳에 문을 열어 이 가운데 44곳이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유치원과 학교 복도, 다세대주택 계단 밑, 박물관 안 등 자리도 다양합니다.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는 이를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 부릅니다.
연금이 지켜준 것
이런 선택들이 가능했던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삶을 지탱해 온 밑바탕에는 '연금'이라는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달 받는 연금이 큰 액수는 아니지만 그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연금 덕분에 저는 밥벌이에 매이지 않고, 세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어요."
실제로 지금도 작은 모임에 나가면 회비와 밥값을 남들과 똑같이 냅니다.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어울릴 수 있는 비결 역시 이 최소한의 울타리 덕분이라 전했습니다. 평생 노후를 크게 염려하며 살진 않았지만, 운 좋게 월급쟁이였던 시절이 있어 작게나마 연금을 손에 쥐게 됐습니다. 이렇게 들어오는 돈으로 가장 많이 쓰는 곳은 다름 아닌 책값입니다. 책 인세도 조금 들어오지만 워낙 적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는 연금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돈벌이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 되짚으며,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안타까움도 조용히 내비쳤습니다.
잘 나이 든다는 것
잘 나이 든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철이 드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가 즐겨 쓰는 '살림살이', 곧 '살리며 사는 삶'이라는 말을 빌리면, 철이 든다는 것은 너를 살릴 때 비로소 내가 살 수 있다는 이치를 몸에 새기는 일입니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철이 드는 것은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오히려 세상 흐름에서 멀어지기 쉬운 만큼, 여러 정보를 교차 검증하고 깊이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이러한 통찰은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서른 즈음의 자신에게, 그리고 이제 막 노후를 그려보기 시작한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애매하게 조금 바꾸는 것으로는 삶이 바뀌지 않습니다. 확 틀어도 안 죽습니다. 저 역시 패션업계, 경영, 글쓰기로 몇 차례 삶을 크게 틀었지만 그때마다 충분히 살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삶의 방향을 대담하게 틀어보는 것만큼이나, 일상을 지탱하는 현실적인 태도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가장 먼저 꼽은 것은 단연 돈입니다. 주식이나 코인은 뭐든지 부풀리는 속성이 있으니 거기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그는 잘라 말합니다. 벌이의 25% 안팎은 꾸준히 저축하고, 형편이 넉넉지 않더라도 최소 10%는 모아서 복리로 굴리라고 권합니다.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도 국민연금만큼은 꼭 들어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실속 있는 태도는 소비와 생활 방식 전반으로 스며듭니다. 화려한 편의보다는 소박한 온기를 택해, 에어컨보다 부채와 선풍기를, 가공식품과 외식보다 손수 지은 밥을 가까이하라고 권합니다. 나아가 넘쳐나는 영상과 인공지능 속에서 온전한 나로 살아가려면, 조금 힘들더라도 책을 읽고 직접 글을 써야 한다는 묵직한 조언으로 이야기를 맺었습니다.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지내는 모임, 밥벌이보다 의미를 택한 선택, 책꽂이 하나로 시작해 전국 57곳으로 퍼진 도서관. 변택주 작가가 걸어온 길입니다. 주어진 것을 기꺼이 여기며 살아온 그의 태도, 그리고 밥벌이에 얽매이지 않을 만큼의 최소한의 연금. 이 두 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삶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또래에,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화려한 노후 자금이 아니라 그 정도의 연금이라도, 지금부터 준비해 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노후는 분명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금은 시작일 뿐, 그 이후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결국 각자가 답할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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