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의 장기 국채 투자, '전부'가 아닌 '일부'로 접근해야
DC·IRP서 개인투자용 국채 직접 투자 가능…확정수익 장점에도 물가·유동성·기회비용 따져봐야
▶필자 소개

올해 9월부터 퇴직연금 가입자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를 통해 개인투자용 국채 10년물과 20년물에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재정경제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개인투자용 국채’ 확대 방안의 후속 조치로, 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 3개 은행과 미래에셋·삼성·한국투자·KB·NH투자증권 등 5개 증권사를 통해 9월 9일부터 15일까지 첫 청약이 진행됩니다.
해당 상품은 원리금보장형 자산 바구니(30% 한도)에 담을 수 있으며,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세전 기준 10년물은 연평균 5.92%, 20년물은 이보다 높은 복리 수익률이 적용됩니다. 정부가 원리금을 전액 보장하는 초안전자산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예금·보험 위주였던 퇴직연금의 안전자산 포트폴리오에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셈입니다.
이번 제도 도입은 장기·분산투자라는 관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퇴직연금은 수십 년에 걸쳐 적립하고 노후에 사용하는 초장기 자금입니다. 10년 또는 20년 동안 금리를 확정하고 만기보유에 따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변동성이 큰 위험자산 중심의 포트폴리오에 안정성을 더하는 균형추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국가가 발행하는 국채라는 점은 예금자보호 한도의 제약을 받는 은행 예금과는 다른 안정성의 근거가 됩니다.
확정수익도 물가 앞에서는 달라진다
다만 개인투자용 국채를 노후자산의 ‘만능 해법’으로 여기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 자산가치 하락 위험입니다. 명목상 확정된 수익을 얻더라도 물가가 예상보다 높게 유지될 경우 실제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수익률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시산을 해보면 이 점이 분명해집니다.
이번 청약 대상인 10년물의 세전 만기수익률은 약 59.28%(연평균 5.92%)입니다. 즉, 1000만원을 투자해 만기까지 보유하면 세전 기준 약 1592만8000원이 됩니다. 하지만 10년 뒤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양은 그동안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령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2%로 유지된다면 10년간 물가는 약 21.9% 상승합니다. 이를 반영하면 10년 뒤 1592만8000원의 현재가치는 약 1307만원 수준이고, 실질 연환산 수익률은 약 2.7%가 됩니다. 연평균 물가상승률을 3.5%로 가정하면 실질가치는 약 1129만원, 실질 연환산 수익률은 약 1.2% 수준까지 낮아집니다. 2022년처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웃도는 국면이 상당 기간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명목상 자산은 늘어나더라도 실질구매력 기준으로는 원금 수준에 머물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결과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기간이 두 배인 20년물에서는 물가의 영향이 더 커집니다. 세전 만기수익률이 약 161.%로 원금이 약 2.6배가 되는 구조라 명목상으로는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4% 수준으로 20년간 이어질 경우 실질 연환산 수익률은 1% 아래로 내려갑니다. 물론 이는 일정한 물가상승률을 전제로 한 단순 시산이며 실제 성과는 세제 및 재투자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확정금리=안전'이라는 인식이 실질가치 기준에서는 반드시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유동성과 기회비용도 함께 봐야
물가 외에도 살펴봐야 할 부분은 유동성입니다. 개인투자용 국채를 중도환매하면 만기보유에 따른 가산금리와 복리 혜택을 받을 수 없고 표면금리를 기준으로 이자를 정산하게 됩니다. 중도환매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상품이 제시하는 만기수익률을 온전히 얻으려면 장기간 자금이 묶인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에 기회비용도 함께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정한 수익을 확정하는 대신 주식 등 위험자산이 장기간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 추가 수익의 기회를 일부 포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은퇴까지 투자 기간이 충분히 남아 있는 가입자라면 장기 국채의 안정성뿐 아니라 다른 자산에서 얻을 수 있는 장기 수익 기회까지 함께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 국채, 결국 ‘분산투자’의 한 축으로
결국 중요한 것은 장기 국채에 ‘전액 투자할 것인가’가 아니라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가’입니다. 개인투자용 국채는 예금이나 보험 상품과 함께 비위험자산을 구성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장기간 사용할 계획이 없는 자금으로 일정한 만기수익을 확보하고 싶은 가입자에게는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난 것입니다.
반면 은퇴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는 가입자라면 장기 국채에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두기보다 주식형 자산 등 다른 자산과의 균형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국채가 안정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포트폴리오 전체를 국채로 채워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퇴직연금 제도가 ‘수익률 제고’라는 정책 목표를 향해 확장되는 과정에서 투자수단이 다양해지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나 어떤 상품이든 수익률을 얻기 위해 얼마 동안 자금을 보유해야 하는지, 물가를 반영한 실질가치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다른 자산에 투자할 기회를 얼마나 포기하게 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장기 국채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전한 자산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이 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은퇴 시점과 투자 기간에 맞춰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필요한 만큼 활용하는 것이 장기 자산배분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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