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경제

[나이듦을 공부합니다] 나이 듦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문유정 기자

 

▶필자 소개

몇 년 동안 열심히 보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EBS에서 방영한 ‘건축탐구 집’이다. 2019년부터 방영된 이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된 후 코로나 시기를 거치기까지 매주 한 편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집의 건축적 의미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조명하는 내용으로 현재도 방영 중이다. 몇 해 동안 방영분 가운데, 체감상 가장 비중 높았던 출연자는 퇴직 혹은 은퇴 후 자신의 집을 지은 사람들이었다. (통계는 다를 수 있다.) 살아보고 싶은 지역을 선택하고, 땅을 보고, 원하는 형태로 설계와 시공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정과 결정을 거쳐 집이 완성된다. 그렇게 지은 집에는 건축주와 유사한 결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보다 보니 지인의 집이 소개된 적도 있었는데, 그의 집을 둘러보며 나도 나이가 들면, 은퇴 후엔 나만의 공간을 가꾸며 살아야겠다는 로망을 품기도 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매일매일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에도, 나는 은연중에 ‘나이 듦’을 은퇴 후의 삶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시니어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시니어의 타깃 세그를 60대로 설정하고, 그 연령대와 가까운 50대 후반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회사에서 해당 연령대는 대부분 임원진이었다. 구매력이 있는 대기업의 임원, 정확하게 타깃층과 일치하는 표본이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인터뷰이가 말하는 시니어는 자신이 아닌 그들의 ‘80대 부모님’의 이야기였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질문을 돌려보아도 나이 들어 당면한 문제와 필요는 부모님의 이야기로 되돌아갔다. 아직 활발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나이 듦을 체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이 듦(Aging)'과 '나이가 들었다'라는 표현은 사전적으로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쓸 때는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적·사회적 맥락을 품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이 듦을 자각하게 된 계기도 나이라는 숫자가 아닌 신체의 물리적 변화였다. 언제인지 모르게 정수리에 솟아난 새치 한 가닥을 한동안 열심히 뽑아댔다. 흰머리의 숫자가 솎아내기로는 불가능한 지점에 다다랐을 때, 이번엔 컴퓨터 화면의 숫자가 울렁거려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땐 희미하게, 어느 땐 분신술을 하듯 약간은 겹쳐 보이게. 노안이 온 것이다. 힘껏 버텨봤지만 보고서의 오타가 늘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돋보기안경을 쓰게 되었다. 돋보기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안경테에 꽤나 신경을 썼다. 안티에이징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았고, 이 무렵부터 ‘동안’이라는 소리가 점점 듣기 좋아졌다. 기대수명이 100세를 향해가고, 통계상의 노인 연령 기준이 뒤로 밀려났다 한들 물리적인 노화는 세상의 변화와 상관없이 제 발걸음대로 찾아왔다. 아마 변화는 이걸로 끝이 아닐 테지만 말이다. 당황하지 않고 이들을 잘 맞이할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

생의 단계마다 우리는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를 한다. 공부를 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가정을 가꾸고, 아이들을 돌본다. 이런 생애주기상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끝난 이후의 삶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통장의 잔고만 확보하면 되는 일일까. 오롯이 나라는 개인만 남은 나이 듦의 시간을 잘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살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귀한 지면을 빌려 나이 듦의 기쁨과 슬픔, 각자의 나이 듦, 세상에 존재하는 N개의 나이 듦의 형태를 보고 그 여정을 어떻게 준비할지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문유정 기자kidcol03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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