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퇴직연금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가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진출 시도와 그 구조적 문제
▶필자 소개
우리나라 국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작금의 주가 폭락의 배경에 국민연금이 있다는 비판이 팽배합니다. 이런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기금형 도입을 틈타 두 가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공기업을 대상으로 직접 민간 퇴직연금사업자(금융기관)와 경쟁을 하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금형을 운용하는 수탁법인들에 OCIO(외부위탁관리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심각한 문제입니다. 국가의 공적기관이 민간 시장에 참여하여 경쟁을 하겠다는 것은 시장 교란 획책으로 귀결될 수 있으며, 외부 위탁의 가장 큰 손이 스스로 외부 위탁을 맡겠다는 것으로 이것은 선한 경쟁을 이끄는 메기가 아니라 토종 물고기의 씨를 말리는 베스와 같은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퇴직연금은 대한민국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있어 가계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현금 자산이자, 은퇴 후 생존을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최근 국민연금이 자본시장에서 보여준 일련의 행보와 그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한계를 직시한다면, 과연 그들에게 개인의 소중한 퇴직연금을 맡길 자격이 있는지 뼈아픈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치 권력에 휘둘린 독립성 상실, 그리고 주가 폭락의 그림자
최근 국내 주식시장이 겪은 극심한 폭락 사태의 이면에는 국민연금의 책임론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시장의 든든한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국민연금이 오히려 폭등을 유도하거나 폭락을 막는 데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짙은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국민연금은 철저히 시장 원칙과 가입자의 이익에 따라 움직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정부 권력과 정치적 입김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는 진단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과거부터 반복되어 온 주가 폭등 유도 논란이나, 약 14.4%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할 자산배분 권고 비율을 20.0%라는 무리한 수준으로 상향 조정한 것은 기금운용의 기본을 저버린 처사이며, 국민연금이 시장의 논리가 아닌 '정권의 입맛'에 맞춰 기금을 운용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더구나 회의록을 2030년까지 비공개하기로 한 결정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반민주적 밀실 행정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퇴직연금을 맡길 경우 벌어질 자명한 비극
이처럼 정부 권력에 휘둘려 시장을 왜곡하고 시스템적 리스크를 키우는 기관이 개인의 가계 자산 중 가장 중요한 퇴직연금마저 굴리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에서 나타난 정치적 외풍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개인의 퇴직연금 계좌로 고스란히 전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거철이나 정권의 위기 때마다 주식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혹은 특정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개인의 퇴직연금이 동원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독립성이 결여된 운용은 필연적으로 수익률 저하와 자산 가치 훼손으로 이어지며, 이는 곧 평생을 바쳐 일한 대가로 쥐어진 국민들의 노후 자산이 붕괴하는 참사로 귀결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주식시장의 폭락 사태 앞에서도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기관이, 과연 내 퇴직연금이 반토막 나는 상황에서는 가입자를 위해 방패막이가 되어 줄 수 있겠습니까?
국가 책임이라는 치명적인 착각과 '수익률 변동성'의 기만
무엇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치명적인 오해 내지 착각입니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국가기관인 국민연금이 퇴직연금을 운용하다가 혹여 손실이 나더라도, 결국 국가나 국민연금공단이 책임져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 9월 (사)한국고용연금복지학회가 전국 퇴직연금 가입자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명확히 나타납니다. 국민연금공단에 맡긴 퇴직연금에 운용 손실이 발생할 경우, 손실 책임 주체에 대해 '국민연금공단'이 61.9%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다음으로 '정부'(27.2%), '가입자 본인'(10.9%)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국민은 국민연금공단이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다 손실이 나면 국가나 국민연금이 책임진다고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국민연금이 운용하다 손실이 나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가입자에게 귀속됩니다. 그러므로 국민연금공단 측에서 주장하는 수수료(비용)는 3분의 1 수준으로 낮추고, 기대 수익률은 3배 이상 낼 수 있다는 것은 "손실 나면 어떡할 거냐"는 점을 호도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퇴직연금을 운용하다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더라도, 국민연금이 가입자의 원금을 보전해 주거나 국가 예산으로 손실을 메워주지 않으며, 메워줄 수도 없습니다.
국민연금은 퇴직연금을 탐할 자격이 없다
국민연금은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수익률을 챙겨줄 진정 선한 사마리아인일까요? 현재의 지배구조와 운용 행태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자본시장의 원칙을 훼손하고, 정치 권력에 종속되어 독립성을 상실한 현재의 국민연금에게 개인의 퇴직연금 운용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통째로 내어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퇴직연금은 국가의 정책 자금도, 정권의 쌈짓돈도 아닙니다. 오직 개인의 땀방울이 맺힌 사유재산이자 생존권입니다. 국민연금은 자신들의 본분인 국민 노후 복지를 위한 재정 고갈 문제 개선이나, 세계 3대 연금으로서 그들과의 수익률 경쟁에 전념하는 것이 진정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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