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Pension의 기업상담] DB퇴직연금, 지나친 '원리금보장'은 보수적 전략이 아니라 고위험 전략이다
DB 적립금 91.9% 원리금보장형…저수익이 키우는 기업의 미래 부담
▶필자 소개
2025년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501.4조 원 가운데 확정급여형(DB)은 228.9조 원으로 45.7%를 차지해 가장 비중이 큽니다. 그런데 DB형 퇴직연금제도를 운영하는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적립금을 예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2025년 말 기준 DB형 적립금 가운데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비중은 91.9%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을 단순히 보수적이고 안전한 전략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DB형에서 중요한 것은 원금이 보전되느냐만이 아닙니다. 기업이 책임져야 할 것은 근로자에게 장래 지급할 퇴직급여를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자산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기업이 아무 판단도 하지 않은 채 예금 등 원리금이 보전되는 상품에 적립금을 묶어두는 것은 위험을 줄인 것이 아니라, 낮은 수익률로 인해 미래 부족액 발생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지난 8월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DB형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기업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025년 DB형의 연간 수익률은 3.5%로, 같은 해 DC형 8.5%, 개인형 IRP 9.4%와 비교해 크게 낮았습니다. 최근 5년간 DB형의 누적 수익률도 15.9%로, 같은 기간 누적 임금상승률 18.9%보다 3%포인트 낮았습니다. DB형은 퇴직 시점의 임금 수준을 반영해 퇴직급여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적립금 운용수익률이 임금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면 DB형의 구조상 기업이 장래에 추가 적립 부담을 질 가능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왜 기업은 원리금보장형에 머물러 있을까?
이처럼 장기적인 적립 부담이 커질 수 있는데도 많은 기업이 원리금보장형 상품 중심의 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DB 퇴직연금 운용은 단순한 금융상품 선택을 넘어 부채 특성과 금리, 변동성, 분산투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이를 전담할 인력이나 체계를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투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은 위험으로 인식하면서도, 낮은 수익률이 장기적인 적립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둘째, 적극적인 운용에 나설 유인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자산배분과 리밸런싱 등을 통해 좋은 성과를 거두더라도 그것이 퇴직연금 담당자의 평가나 보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반면 단기적인 손실이나 변동성이 발생하면 곧바로 문제가 부각되고, 담당자는 내부 보고와 설명에 대한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결국 담당자 입장에서는 가장 무난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택’으로 여겨지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선호하게 됩니다.
셋째, 퇴직연금이 기업의 일상적인 경영 현안에서 후순위로 밀리기 쉽다는 점도 이유입니다. 생산과 영업, 인사, 노무 등 당장 처리해야 할 현안에 비해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기 쉽습니다. 그 결과 별도의 점검이나 전략 변경 없이 기존 운용 방식이 관행적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DB형 퇴직연금, 기업은 어떻게 운용해야 할까?
이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기업이 적립금 운용을 담당자 개인의 판단에 맡기기보다 체계적인 운용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퇴직연금사업자의 자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DB형에서는 기업이 목표수익률을 최소한 임금상승률 이상으로 설정하고, 퇴직급여 부채와 연계한 자산배분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업의 퇴직연금 담당자가 임금상승률과 할인율, 퇴직부채 듀레이션, 목표수익률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적정 운용전략을 세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한 금융상품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부채관리와 자산배분을 결합한 전문적인 ALM(자산부채관리)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업 내부의 역량만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퇴직연금사업자의 전문적인 자문과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기업의 퇴직연금 실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야 합니다. 적립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려면 담당자 개인에게 별다른 보상 없이 단기 손실에 대한 책임만 지우는 구조부터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적립금운용계획서(IPS), 외부 전문가 자문, 정기적인 자산배분 점검 회의 등의 체계를 정교하게 마련해 실무자가 정해진 원칙에 따라 적립금을 관리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평가 기준 역시 단순히 ‘사고가 없었는가’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운용 목표를 얼마나 충실하게 달성했는지를 중심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기업의 경영진과 퇴직연금 담당자는 달라지는 감독정책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을 단순한 관리 업무에 그치지 않고, 기업이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관리해야 할 중요한 경영 이슈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제 ‘원리금보장’에만 머물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감독당국도 DB형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말 DB형 적립금을 모범적으로 운용한 사용자와 사업자를 선정해 포상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DB형 퇴직연금 사업장 가운데 적립금 미충족 사업장을 대상으로 정기 감독을 실시하고,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등 실효적인 제재 조치도 병행할 계획입니다. 앞으로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넣어두고 별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식의 접근만으로 퇴직연금을 관리하기는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원리금보장 위주의 운용은 겉으로 보기에는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낮은 수익률을 장기간 방치하는 운용이 될 수 있으며, 결국 필요한 노후자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원금 보전에만 머물기보다 지금부터라도 DB형 퇴직연금의 특성에 맞는 적극적인 적립금 운용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걷지 않는다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FC바르셀로나의 전설적인 축구선수였던 카를레스 푸욜(Carles Puyol)이 남긴 말입니다. 당장의 변화를 미루면 그만큼 미래의 부담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지금도 DB형 퇴직연금 운용을 미루고 있는 기업이라면 이 말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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