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장세, 흔들리지 않는 '올웨더 포트폴리오' 전략
국면 분산으로 변동성은 낮추고, 연금 자산의 안정성은 지키고
▶필자 소개
연금은 일반적인 자산운용과 차이가 있습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0~40년에 걸쳐 쌓이고, 은퇴 이후 수십 년간 생활비로 인출되는 자금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연금 자산운용은 늘 두 가지 상반된 목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는 물가상승률을 웃도는 수익률을 확보해 실질구매력을 지키는 '수익성'이고, 다른 하나는 큰 폭의 손실로 은퇴 시점의 자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안정성'입니다. 문제는 이 둘이 종종 충돌한다는 점입니다. 주식 비중을 높이면 장기 기대수익률은 올라가지만 변동성도 함께 커집니다. 반대로 채권과 예금 위주로 운용하면 원금은 지킬 수 있지만 물가상승을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특히 국내 연금 가입자 상당수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경기 국면과 무관하게 꾸준한 성과를 추구하는 '전천후(All Weather)' 자산배분 전략은 연금 운용의 대안적 참고 모델로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경제국면 4가지로 구분
올웨더 포트폴리오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립자 레이 달리오(Ray Dalio)가 고안한 자산배분 전략입니다. 이 전략은 투자 대가들의 조언을 담은 토니 로빈스의 저서 『머니(Money)』에서 달리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개인 투자자도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대중에 소개됐습니다. 달리오는 경제 국면을 '성장'과 '물가'라는 두 축으로 나눠 네 가지로 구분합니다.
▲경제 성장에 물가 상승이 겹치는 인플레이션 호황기 ▲성장 없이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기 ▲성장과 물가가 함께 꺾이는 디플레이션 불황기 ▲성장은 이어지되 물가 압력이 없는 골디락스 국면입니다. 이 네 국면에서 상대적으로 성과가 좋은 자산군이 각기 다르므로, 어느 한 국면에 자산이 쏠리지 않도록 안배해야 특정 시기의 급락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핵심 원리입니다. 단순히 비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 자산군이 포트폴리오 전체 위험에 기여하는 정도를 국면별로 균등하게 배분하려 한 것이 이 전략의 특징입니다.
5가지 자산으로 자산배분
달리오가 공개한 기본형 올웨더 포트폴리오의 자산배분 비중은 다음과 같습니다.
채권 비중이 55%로 절반을 넘어 표면적으로는 '안전자산 중심'으로 보이지만, 장기국채는 금리 변동에 따라 가격 변동폭이 큰 자산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달리오는 이를 감안해 주식과 장기채가 포트폴리오 위험에 기여하는 정도를 비슷하게 맞추는 방식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통상 이 비중을 기준으로 연 1회 재조정(리밸런싱)하며 유지하는 것이 기본 운용 방식으로 소개됩니다.
급락장에서 방어력 장점
올웨더 포트폴리오의 장점은 첫째, 국면 분산 효과입니다. 특정 자산군에 자금이 쏠리지 않아 어느 경제 국면에서도 포트폴리오 전체가 동시에 급락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주식이 반토막 가까이 하락하는 국면에서, 같은 기간 미국 장기국채와 금은 오히려 가격이 오르며 손실을 상쇄한 것으로 보고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산을 함께 담는 것이 올웨더 포트폴리오 설계의 출발점입니다.
둘째, 급락장에서의 방어력입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S&P500지수가 한 달여 만에 30% 안팎 급락하는 동안 여러 백테스트 자료에서 올웨더 포트폴리오는 장기국채 강세 등에 힘입어 낙폭을 상당폭 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출이 임박한 은퇴자산일수록 이러한 하방 방어력의 가치가 커집니다.
셋째, 위험 대비 수익의 효율성입니다. 국내외 여러 장기 백테스트에서 올웨더 포트폴리오는 주식 100% 포트폴리오보다 연평균 수익률(CAGR) 자체는 낮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표준편차(변동성) 대비로 따지는 샤프지수는 오히려 더 높게 나왔습니다. 이는 '덜 벌어도 덜 흔들리는' 효율적인 구조라는 의미인데, 큰 손실을 감내하기 어려운 연금 자산의 성격과 맞닿아 있습니다.
넷째, 단순하고 규칙 기반의 운용이라는 점입니다. 시장을 예측하거나 개별 종목을 고르는 전문성이 없어도 정해진 비중과 연 1회 안팎의 정기 리밸런싱만으로 운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연금저축·IRP 투자자 중에는 매년 정해진 시점(예: 연말 또는 특정 기념일)에 맞춰 기계적으로 비중을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이 전략을 실행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끝으로 초보 투자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5개 안팎의 자산군을 국내외에 상장된 ETF 5~6개 종목만으로 구성할 수 있어 개별 기업 분석이나 산업 전망 같은 전문적 판단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투자 경험이 적은 연금 가입자도 상대적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세장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과
올웨더 포트폴리오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점으로는 첫째, 강세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저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식시장이 강하게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채권·금·원자재 비중이 높은 올웨더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이 뒤처지기 쉽습니다. 실제로 2020년 3월 저점 이후 이어진 미국 증시의 강한 반등장에서, S&P500지수는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올웨더 포트폴리오는 이 상승폭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둘째, 금리 상승기에는 취약한 특성이 나타납니다. 채권 비중이 55%(장기채 40%+중기채 15%)에 달해,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국면에서는 채권 가격 하락의 타격이 큽니다. 실제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을 연속 단행하며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자, 미국 장기국채 가격이 급락하면서 올웨더 포트폴리오의 채권 부분이 오히려 주식보다 더 큰 손실을 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셋째, 자산군 간 상관관계 가정의 한계가 있습니다. 올웨더 포트폴리오는 주식과 채권이 대체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과거 수십 년간의 통계적 상관관계를 전제로 설계됐습니다. 그러나 2022년처럼 금리 급등으로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하락하는 국면이 발생하면, 이 같은 분산 효과가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내 ETF로 올웨더 포트폴리오 구성
올웨더 포트폴리오를 직접 구성해 운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국내 증권시장에 상장된 ETF만으로 올웨더 포트폴리오와 유사한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연금계좌(퇴직연금 DC형, IRP, 연금저축)에서도 매매가 가능한 국내 상장 ETF를 활용하면 접근성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제 구성 시에는 각 ETF의 순자산 규모, 거래대금(유동성), 총보수, 환헤지 여부(H 표기)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위험자산 투자 한도(퇴직연금의 경우 통상 위험자산 70% 이내 규제)와 상품별 편입 가능 여부를 사전에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국내 상장 채권·원자재 ETF는 대부분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므로, 현물 지수를 그대로 추종하는 해외 ETF와는 수익률 흐름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올웨더 포트폴리오는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라기보다, 어떤 경제 국면이 오더라도 포트폴리오 전체가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설계된 위험관리 중심의 자산배분 방식입니다. 은퇴자산이라는 특성상 큰 폭의 손실을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연금 운용에 있어, 올웨더 포트폴리오의 국면 분산 원리는 참고할 만한 틀을 제공합니다. 다만 개인의 은퇴 시기, 위험 감내도, 이미 보유한 자산 구성에 따라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비중을 조정해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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