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경제] 기금형 퇴직연금 성공의 조건, ‘독립적 거버넌스 법제화’
보험연구원 강성호 선임연구위원 보고서
▶필자 소개
오는 9월 초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 대한 정부의 추진안 발표를 앞둔 가운데, 제도의 성공을 위해서는 ‘독립적인 거버넌스 구체화·법제화’와 ‘수수료 및 성과 비교공시 체계 강화’가 필수 과제로 꼽혔습니다.
보험연구원이 지난 10일 발표한 ‘호주·영국의 기금형 퇴직연금 비교와 보험산업의 과제’라는 제목의 리포트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금형 퇴직연금의 성패를 가르는 첫 번째 핵심 요소는 수탁법인의 독립성 확보와 이해상충 방지 체계입니다. 보고서는 해외 사례를 통해 수탁법인의 독립성 유무가 연금제도의 성패를 결정지었음이 명확히 드러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호주의 경우, 초기 금융기관형 기금(Retail Funds)이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으나 모회사 중심의 이사회 운영, 수직계열화에 따른 계열사 편중 투자, 수탁자 독립성 결여 등의 문제가 지속되면서 경쟁력을 상실했습니다. 그 결과 4대 시중은행과 주요 금융그룹이 연금 사업을 매각하고 철수하는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영국의 마스터트러스트(Master Trust)는 연금을 후원하는 금융회사(Scheme Funder)와 실질적인 운용 및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독립 수탁이사회를 철저히 분리했습니다. 이를 통해 금융기관 계열의 수탁법인이라 하더라도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는 거버넌스를 정착시켰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노사정 공동선언에서 수탁법인의 독립성과 이해상충 방지 원칙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를 실효성 있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을 통해 ▲수탁자 선임·해임의 독립성 규정 ▲독립이사 비율 의무화 ▲이해관계자 간 거래 통제 장치 ▲독립적 의사결정 권한 명시 등 구체적인 인가 및 운영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함께 두 번째 과제로 가입자가 수수료와 운용 성과를 직관적으로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는 투명한 공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호주 금융기관형 기금의 실패에는 자산운용·자문·플랫폼 과정에서 이중·중복으로 부과된 고비용 수수료 구조가 큰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이에 반해 영국은 디폴트 운용상품에 대해 적립금 대비 0.75%의 총수수료 상한제(Fee Cap)를 도입하여 저비용 경쟁을 유도했습니다. 더불어 투자성과와 비용, 서비스 품질을 종합 평가하는 'VFM(Value for Money, 가치 대비 비용)' 평가 체계를 정착시켜 저성과·고비용 기금의 퇴출 및 통합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기금형 퇴직연금이 정착되면 수탁법인 단위로 총비용부담률(TER), 실적배당 수익률, 서비스 품질 등이 상시 비교·공시되어야 합니다. 수수료 상한 설정 및 VFM 평가 방식과 같은 성과·수수료 공시 인프라가 사전에 명확히 마련되어야만, 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이 촉진되고 가입자의 머니무브(자금이동)가 알맞게 유도되어 연금 자산의 장기 운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는 단순히 운용 형태를 바꾸는 것을 넘어, 국내 연금 시장의 자산 운용 패러다임을 '보장'에서 '성과 및 전문성'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수탁법인의 독립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를 근퇴법에 명확히 규정하고, 총수수료 관리 및 성과 비교공시 시스템을 조속히 정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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