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경제

[시네마은퇴] 영화 ‘인턴’, 70세에 다시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70세 인턴 벤이 다시 회사로 출근한 이유 경력은 나이 들지 않는다…중장년 재취업이 던지는 새로운 질문

문유정 기자
사진 ㅣ 영화 '인턴' 포스터
사진 ㅣ 영화 '인턴' 포스터

후드티와 스니커즈 차림의 젊은 직원들 사이로, 정장을 갖춰 입은 노년의 신사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일흔의 나이에 다시 일터로 돌아온 그의 직함은 임원도, 부장도 아닌 ‘인턴’.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벤 휘태커의 두 번째 직장생활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인턴>(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흔히 세대 갈등을 뛰어넘는 따뜻한 교감의 이야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달리해 보면, 오랜 직장생활이 끝난 뒤 우리에게 무엇이 남는지, 그리고 그 공백을 어떤 가치로 다시 채워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침 올해는 배우 최민식과 한소희가 주연을 맡은 한국판 <인턴>도 오는 9월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영화 속 ‘70세 인턴’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에게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기대수명이 늘면서 퇴직 이후 보내야 할 시간은 길어졌고, 은퇴가 곧 일의 끝을 의미하지도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누군가는 미뤄뒀던 취미나 여행을 시작하며, 또 다른 이들은 새로운 관계와 활동 속에서 삶의 다음 장을 만들어갑니다.

길어진 은퇴 이후의 시간,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그 자리를 채워가야 할까요?

 

퇴직이 앗아가는 것은 월급만이 아닙니다

은퇴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따져보는 것은 단연 '노후자금'입니다. 국민연금 수령액과 퇴직연금을 확인하고, 모아둔 자산으로 은퇴 후 생활을 감당할 수 있는지 꼼꼼히 계산하곤 합니다. 안정적인 소득이 뒷받침되어야 은퇴 이후의 삶도 비로소 구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정적인 준비가 끝났다고 해서 은퇴 준비가 모두 완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은 매달 월급을 받는 일터이기도 하지만,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삶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해온 이들에게 퇴직은 단지 소득이 줄어드는 사건에 그치지 않습니다. 익숙했던 일상의 리듬과 관계, 그리고 사회적 역할까지 한꺼번에 전환점을 맞이하는 일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벤 역시 이러한 변화를 겪습니다. 은퇴 후 여행을 떠나고 취미를 즐기며 봉사활동까지 해보지만,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가 다시 일터로 향한 이유도 생활비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이 쌓아온 경험을 나누며 사회 안에서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참된 은퇴 준비는 통장 잔고를 채우는 일에서 나아가, 직장을 떠난 후에도 어떤 관계와 역할을 이어가며 살아갈지 고민하는 과정으로 봐야 합니다. 노후라는 길고 긴 시간을 다채롭게 채워나가는 데에는, 매달 들어오는 생활비만큼이나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할 삶의 명분이 꼭 필요합니다.

 

경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보여주는 방식은 달라져야 합니다

사진 ㅣ 영화 '인턴' 스틸 컷
사진 ㅣ 영화 '인턴' 스틸 컷

새로운 직장에서 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던 바탕에는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 쌓아온 경험이 있었습니다. 컴퓨터를 다루는 데는 서툴고 빠르게 변화하는 스타트업 문화도 낯설었지만, 수십 년간 사람들과 부대끼며 익힌 통찰력과 태도는 여전히 대체할 수 없는 그의 강점이었습니다.

벤은 낯선 환경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동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누군가 어려움을 겪으면 가만히 상황을 살피고, 문제가 생겨도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 뒤 필요한 순간에 가만히 자신의 경험을 보태며 차곡차곡 동료들의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Experience never gets old. Experience never goes out of fashion.”

(경험은 결코 늙지 않습니다. 경험은 결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는 이런 명대사가 등장합니다. 이 말처럼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은 나이가 들거나 직장을 떠났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일터에서는 그 경험이 발휘되는 방식이 달라질 뿐입니다. 과거에 어떤 직급에 있었고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이를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가 훨씬 중요해집니다.

물론 현실의 재취업이 벤의 이야기처럼 늘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일했더라도 새로운 업무를 배워야 할 수 있고,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이나 달라진 조직문화에도 적응해야 합니다. 이전 직장에서 인정받았던 경력이 새 일터에서 그대로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장년의 재취업에서는 ‘예전에 어떤 자리에서 일했는가’보다 ‘그 경험으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살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수십 년의 경력을 지나간 직함으로 남겨두지 않고, 그 안에서 쌓은 역량과 강점을 끌어내 새로운 일과 연결하는 것. 벤의 두 번째 직장생활이 보여주는 경력의 참된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026년 한국에도 필요한 '두 번째 경력'

벤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일하는 기간도 부쩍 길어진 지금, 퇴직 후의 경력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는 우리에게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퇴직은 일의 완성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었고, 일자리를 둘러싼 고민 역시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한층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다행히 현장의 중장년을 돕기 위한 사회적 지원 체계도 한층 촘촘해지는 추세입니다.고용노동부는 정년 이후에도 근로자가 주된 일자리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장년내일센터에서는 40세 이상 중장년의 생애경력설계와 전직·재취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장 취업 준비가 필요하다면 '국민취업지원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아예 새로운 기술을 배워 2막을 열고 싶다면 '한국폴리텍대학 중장년특화과정' 같은 직업훈련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여기에 퇴직 후 새로운 분야에서 일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중장년 경력지원제'까지 더해지면서, 경력 전환의 문턱은 예전보다 한결 낮아졌습니다.

‘정년이 곧 일의 끝’이라 믿었던 공식은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제 은퇴 준비는 단순히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일을 넘어, 퇴직 후 어떤 일과 역할로 내 삶의 2막을 채워갈지 그려보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이력서의 ‘다음 줄’을 미리 그려본다는 것

사진 ㅣ 영화 '인턴' 스틸 컷
사진 ㅣ 영화 '인턴' 스틸 컷

벤은 과거의 직함은 기꺼이 내려놓았지만, 수십 년간 쌓아온 경험과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내려놓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 안에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며 가치 있는 두 번째 직장생활을 열었습니다.

이처럼 노후자금과 연금을 따져보는 것 못지않게, 은퇴를 준비할 때는 스스로에게 질문 하나를 더 던져보아야 합니다. “직장을 떠난 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그 답은 새로운 일터일 수도 있고, 봉사나 사회활동, 혹은 오랫동안 미뤄둔 배움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이든 중요한 것은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할 삶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퇴직은 내 이력서가 끝나는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다음 줄로의 전환점입니다. 영화 속 벤은 일흔이라는 나이에 새로운 명함을 손에 쥐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언젠가 익숙했던 지금의 명함을 내려놓는 날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는 세상 앞에 어떤 이름으로 다시 자신을 소개하게 될까요?

 

 

문유정 기자kidcol03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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