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을 읽습니다] 처음 만나는 ‘친절한 알츠하이머 적응기’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나는 나』, 사토 마사히코 지음, 세 개의 소원
▶필자 소개
디디에 에리봉은 그의 저서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에서 생의 마지막에 요양원에 가게 된 어머니를 통해 노인 문제의 현실을 접하게 된다.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당사자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할 수 있는 데 반해, 노인 문제의 경우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쇠약해지고 의존적인 고령자들은 삶의 주체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정신적·육체적 쇠약과 인지 능력의 쇠퇴는 ‘우리’라는 복수형 담론의 집합적 주체가 될 수 없다.
노쇠한 이들, 자율성의 상당한 상실과 때로는 인지 능력의 쇠퇴로 자주 시달리는 이들은 하나의 ‘우리’를 구성하고 일인칭 복수형 담론의 집합적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집렬성’(서로 옆에 있지만 따로 떨어져 있는 병치된 개인들)에서 ‘집단’(동원되고 결집된 개인들)으로의 이행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¹ 보부아르는 결연히 선언한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고 싶다.”²
당사자의 목소리가 가장 부재한 영역이 아마도 치매 환자가 아닐까. 치매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치매 진단을 받은 후 10년에 걸쳐 일상을 기록한 메모와 강연을 준비한 자료를 엮어 기록한 이가 있다. 바로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나는 나』의 저자 사토 마사히코다. 저자는 51세에 치매 판정을 받은 초로기 치매 환자이다. (참고로 65세 이전 치매 진단을 받은 경우를 초로기 치매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전체 치매 환자의 약 10% 정도로 약 10만 명에 달한다) 느닷없는 ‘치매’ 선고를 받은 후 자신의 삶을 통해, 치매에 걸리면 삶은 불편해질지언정 결코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당사자 주권을 명확히 한다. 사토 마사히코는 요양소에 입소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아갈 것을 결심한 후, 치매 환자로서 혼자 살아가는 법에 대해 자신만의 기준과 루틴을 만들고 그 방법을 공유한다.
자원봉사 활동, 교회 기도회와 성가대 연습, 성경 공부, 먼 거리 외출 등의 활동으로 일주일의 루틴을 만들고 주 2회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식사 준비와 청소를 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도움을 받을 뿐 아니라 자원봉사를 통해 경제적 소득 활동과 상관없이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활동을 지속했다는 점이다. 점점 떨어지는 인지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휴대폰, 카메라를 활용한 기록과 메모도 열심히 한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거나 정보를 처리하기 힘든 자신의 상황을 솔직히 알리고, 한 번에 한 가지씩 혹은 한 사람씩만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한다.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기 위해 사지 말아야 할 물건 목록을 작성해 쓸데없는 지출을 줄인다. 이러한 세세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잘되지 않을 때는 과감히 놓아 버리는 연습도 한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슬퍼하는 대신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것만이 살아갈 방법이다.” (p.58)
이 외에도 다양한 취미 활동과 자신의 상태를 숨기지 않고 치매 당사자 모임을 통해 동료를 만난다. 영화 <스틸 앨리스>의 주인공 크리스틴 브라이든과 만나 공개 대담을 하기도 하고 강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치매 당사자 없는 정책에 반대’한다는 기본 원칙하에 치매 당사자 본인이 활동을 해 나가는 <일본 치매워킹그룹>을 발족하고 대표로도 활동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 그리고 앞으로 치매에 걸릴지도 모를 무수한 사람을 위해 치매에 걸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갑시다.
인간의 가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저런 것을 할 수 있다’라는 효율성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도 존재만으로도 소중합니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사회를 향해 치매 당사자의 생각을 전하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p.190)
책을 통해 저자의 활동과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건네는 일상의 조언은 마치 나에게 건네는 조언 같다. 내가 당장 따라 하고 싶을 정도로 용감하고 알차다. 담담해 보이는 문장 뒤 필사적으로 건넨 치매 당사자인 그의 한마디는 내가 가지고 있던 치매에 대한 편견과 시선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치매가 있어도 삶은 괜찮다고, 막연한 두려움보다 매일의 일상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해 보자고, 취미를 즐기고 사람들과 어울려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다는 증거가 되어준 사토 씨의 이야기는 치매가 아닌 누구에게도 가닿을 수 있는 말이다. 이 울림에 다시 한번 귀와 마음을 기울여 보자.
¹ 디디에 에리봉,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²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홍상희·박혜영 옮김, 책세상,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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