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경제

[나이듦을 공부합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지는 노인의 목소리

홍태준 기자

▶필자 소개

80대인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가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과, 이비인후과, 통증의학과를 거쳐 요즘은 종합병원 신경과도 주기적으로 다닌다. 예약을 하고 가더라도 최소 한 시간 정도의 대기는 각오해야 한다. 대기 후 진료 시간은 문진을 포함 대략 5분을 넘지 않는다. 환자의 상태에 대한 질문을 할 때 의사는 어머니가 아닌 내 눈을 바라본다. 증상이나 일상에서 필요한 행동을 설명할 때도 시선은 여전히 환자가 아닌 보호자를 향해 있다. 의사는 빠르게 환자의 최근 상태를 확인하고 특이점에 따른 처방을 한다. 진료가 끝나면 간호사와 다음 진료 일자를 예약하고, 대형 키오스크를 통해 수납을 한 뒤 기계가 뱉어내는 처방전을 들고 나온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동안 피진료자인 어머니는 가만히 앉아 있거나 보호자인 나를 따라다닌다. 병원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처음부터 어머니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듣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첫 진료 때에는 적극적으로 본인이 받고 싶은 치료 방향에 대해 의견을 표현하고, 처방한 약에 대한 질문도 했었다. 하지만 잘 알아듣지 못해 다시 질문을 했을 때 나오는 의사의 다소 위압적인 반응에 주눅이 드신 듯 차츰 진료실에서 말수가 줄어들고, 네, 아니요 정도의 대답만 하게 되었다. 나는 이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게 된다. 의사 한 명당 배정된 환자 수에 따른 진료 시간의 한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기다린 것처럼 다른 환자의 진료 대기 시간이 무한정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대답하는 보호자와 이야기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의사의 힘이 덜 드는 상황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이해는 병원과 의사의 입장이다. 가장 우선으로 배려받아야 할 당사자인 환자에 대한 이해가 빠져 있다. 자신의 병세를 진료하고 논의하는 자리에서조차 배제당하는 기분을, 환자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20여 년간 어머니가 남긴 일기를 따라, 의사인 아들이 저술한 『알츠하이머 기록자』¹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70세 무렵의 저자의 어머니는 조카 부부가 이민을 가게 되면서 혼자 남게 된 언니를 잠시 돌보며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다.

“언니는 결국 아무런 역할도 부여받지 못한 채 진구도 없이 홀로 가족들과 떨어져 버렸다. 손자들이 여러모로 선뜻 손을 내밀며 함께해 주긴 했지만, 전제적으로는 따라주지 못하는 모습. 노인이란 이런 것인가 쓸쓸해진다.” (p.59)

오랫동안 알고 지낸 세탁소 주인이 미납 금액이 있다는 말에, 그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세탁소에 돈을 지불해 버린 아들의 행동에 자존심을 크게 상해한다.

혼자서 생각해 보니 억울하다. 다시 지불해도 괜찮지만, 내가 3만 엔도 내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세탁소 주인에게 확실히 말하고 싶었다. 오해도, 돈을 다시 주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눈을 멀뚱멀뚱 뜨고서 내 잘못이라고만 하면 내 인권은 어떻게 되나? 아들이 그것만큼은 확실히 얘기했을까? (p.83)

비용 지불 문제로 생긴 갈등보다 자신은 배제한 채 적당한 선에서 정리하려는 자녀에 대한 분노가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행간에서 배어나는 늙음에 대한 슬픔이 느껴졌다.

병원이나 일상뿐 아니라 은행에서도 노인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앱으로 처리하기엔 상담이 필요한 내용이 있어 지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증권사 출입문 바로 옆에는, ‘앱 사용 문의 사절’이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증권사 앱은 다른 영역에 비해 UI가 훨씬 불편해서 젊은 사람들도 사용에 헤매는 경우가 많다. 지점의 안내문을 보는 순간 앱이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은 계층은 고객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의미인가 싶어 한참을 쳐다보았다. 상담할 차례가 되어 창구에 안내 문구에 대해 문의하니, 앱 사용법을 묻는 고객이 많아서라고 했다. 사용법에 대한 문의가 많다면 좀 더 쉽게 효율적으로 앱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을 고민하는 게 맞지 않을까? 더더구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들고 찾아온 고객에게 알아서 하고 묻지 말라는 태도는 대체 어떤 의미일까?

『알츠하이머 기록자』에도 교통편 환승, 금융기관이나 병원의 디지털화된 시스템 앞에서 좌절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제언한다.

초고령 사회가 된 오늘날, 이때의 어머니 정도로 인지 기능에 저하가 온 사람이 넘쳐날 텐데, 기계화에 의존하는 합리성만 좇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인간이 대응하는 자리도 남겨두면 안 되는 걸까 생각해 봅니다. (p.147)

우리 사회도 이미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2035년에는 30%를 넘어서고 2050년에는 40%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35년과 2050년의 노인은 지금보다 훨씬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겠지만, 어떤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될지, 그 앞에서 어떤 도움이 필요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더 이상 소수가 아님을 인지하면서도, 노년층을 배려하고 돕는 사회적 인식은 아직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노인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고 시몬 보부아르는 얘기했다. 다음 진료 시에는, 의사가 다시 내 눈이 아니라 어머니의 눈을 바라봐주면 좋겠다. 그 작은 시선의 방향이 이 사회가 노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지표일 테니까.


¹『알츠하이머 기록자』, 사이토 마사히코 지음, 조지혜 옮김, ㈜글항아리

 

 

홍태준 기자askhongp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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